난세에 간신 춤춘다, 대표적인 간신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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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에 간신 춤춘다, 대표적인 간신들의 이야기

지금으로부터 약 1여 년 전에 블로그 개편을 했었습니다. 이 개편과 함께 여러 가지 이유로 말미암아 과거에 작성했던 글들에 대한 접근을 못 하도록 막아놨습니다. 최근에 블로그에 글을 작성하면서 로그를 살펴보니 '간신'이란 키워드를 통해 필자의 블로그에 많은 수의 접근 시도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이전에 작성했던 글을 편집/수정하여 발행합니다. 


간신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奸臣'인 경우에는 간사한 신하를 뜻하고, '諫臣'인 경우에는 임금에게 옳은 말을 전하는 신하로 '忠臣'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각주:1]. 오늘 여러분께 소개하는 책은 한국사의 대표적인 '奸臣' 들을 소개한 『난세에 간신 춤춘다』입니다. 이 책은 인터넷 서점 YES24에서 제공해주셨습니다.


예로부터 간신과 충신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당 시대의 권력자에게 권력을 얻기 위해 머리를 조아리는 일명 'YES' 맨은 간신이란 칭호를 받기에는 뭔가 부족해 보입니다.


실제로 이 책에서 소개하는 간신들의 리스트를 보면, 시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고, 주름잡았던 똑똑하고 명석한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초심을 잃고, 백성을 돌보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기득권과 권력에 눈이 멀어버린 순간 역사는 그들을 간신이라 칭하게 됩니다. 또한, 시대가 어떤 이를 간신으로 바꿔버린 예도 많이 있습니다. 혹자는 '역사는 승리자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당 시대의 주 세력에 대항했다가 패배한 세력들은 반역자가 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역사에도 많은 이가 이와 같은 분류로 희생되었죠.


이 책의 리스트에 올라와 있는 인물들을 보면 대부분 알고 있는 인물들입니다. 적어도 사극에서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본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이 책을 통해 그 인물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단편적이라도 살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The Book INSIDE

[제목] 난세에 간신 춤춘다.

[평점] ★★★★


[저자] 최용범, 함규진

[링크] 도서소개 | 미리보기


페이퍼로드| 2010-05-07

반양장본 | 316쪽 | 223*152mm (A5신) | ISBN(13) : 9788992920414


함규진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저자의 맨 처음 전공은 법학이었다. 그러나 대학에 입학해서 교수님께 “학문을 시작하는 입장에서 기초적인 교양과 지식을 쌓으려면 어떤 책부터 읽으면 좋을까요?”하는 질문을 드리자 “법대에 들어왔으면 사법고시에 필요한 책만 봐라. 그것 말고는 볼 책이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그 후로 법학 공부에 정이 붙지 않았던 저자는 대학도 학과도 바꾸고 새출발을 하게 되었다.


최용범

이제 기자보다는 역사작가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리는 저자로 출판계가 불황이던 시절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은 『한국의 부자들』을 기획해 세인의 이목을 끌기도 한 출판기획자이다. 그는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졸업 후 처음으로 다녔던 회사가 월간 『사회평론 길』이었다. 기자생활을 한 덕에 사람을 만나는 직업에 익숙한 그는 더난출판사 기획팀장을 지내면서 출판기획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본 절에서 소개된 정보는 다음도서와 인터넷 서점 YES24/알라딘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활용했습니다.


간신과 충신의 구별 방법

여러분이 정의하는 '奸臣'은 어떤 이를 칭하고 싶으신가요? 『난세에 간신 춤춘다』의 저자는 다음 4가지로 간신들을 분류했습니다.


1. '왕의 남자', 측근이 나라를 망친다.

2. '실세 간신', 권세에 취해 왕권까지 넘본다.

3. 역사의 승자가 그들을 간신으로 몰았다.

4. 모든 기분은 '대세', 부귀영화만이 길이다.


하지만 필자는 위 분류로는 명확히 '奸臣'을 구분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시대에 따라 또는 권력자에 따라 '奸臣'이 '忠臣'이 될 수도 있고, '忠臣'이 '奸臣'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각주:2]. 사실 어느 기준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극명하게 달라지기도 하죠.


신숙주와 조말생은 간신일까? 충신일까?

하나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조선 시대 신숙주(申叔舟)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신숙주는 '忠臣'일까요? '奸臣'일까요? 신숙주는 단종(端宗)임금에게는 '奸臣'이었을 것이고, 세조(世祖)에게는 가장 충직한 신하 중 한 명이었을 것입니다. 만약 세조가 왕위 찬탈에 실패했다면, 신숙주는 '奸臣' 뿐만 아니라, '逆臣'으로 평생 우리의 기억에 남아있겠지요[각주:3].


하지만 신숙주를 '奸臣'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신숙주가 역사의 승리자이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역사의 승리자로 기억되는 사람들도 후세에 '奸臣'으로 기억되는 인물들이 있기 때문에, 이 논리는 뭔가 좀 부족해 보입니다. 반면에 신숙주와 같이 가담한 한명회(韓明澮)는 '奸臣'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신숙주와 한명회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또 다른 인물에 대해 논해 볼까요? 조선 세종(世宗) 시기의 인물인 조말생(趙末生)입니다. 조말생은 능력이 굉장히 출중한 것으로 보입니다. 혹자는 문무를 겸비한 조선 최고의 엘리트라고 말하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많은 액수의 장죄(贓罪)[각주:4]를 지었는데, 교형(絞刑)[각주:5]을 10번 정도 시행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액수였습니다. 조말생은 교형을 10번이나 받을 만큼 엄청난 죄를 지었음에도 '奸臣'으로 기억되지 않습니다[각주:6]. 이는 또 어떤 이유일까요? 당시 권력자인 세종이 보호를 해줬기에 가능한 것일까요?


필자는 세종이 정말 훌륭한 리더라고 생각합니다. 위의 예에서 조말생은 엄청난 양의 뇌물 수수 때문에 백성에게 큰 고통을 안겨줬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단편적으로 보자면 그는 '奸臣'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러나 조선 초기처럼 전체적으로 인재가 부족했던 시절에 만약 조말생과 같은 인물이 없었다면, 백성이 더 큰 고통을 받지 않았을까요?


많은 이들이 세종의 판단에 의문부호를 달 것입니다. 왜! 엄청난 뇌물을 수수한 자를 용서하는 것일까? 이 사건에 대해 『세종, 부패사건에 휘말리다』의 저자인 서정민 작가님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정리했습니다.


세종은 단지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나라를 부유하게 하기 위해 때를 보아 법 적용을 유연하게 했을 뿐이다. 조말생의 경우에도, 세종은 그의 능력은 샀지만 죄는 명백히 하여 후에 유사한 사례가 있을 때 참고하도록 했다. 실제로 조말생 뇌물사건을 처리하는 동안 축적된 논의는 이후 100여 년간 장오죄의 처벌, 장오범과 그 자손의 인사 문제 등에 있어서 리딩케이스로 작용하였다. 그렇다면 세종은 누구인가? 법조인의 눈으로 본 세종은 법치주의를 견지하되 중도를 따르는 인물, 즉 실리적 법치주의자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역사에 '奸臣'들로 기억되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자신들의 행보 안에 '백성에 대한 애민하는 마음'이 있었느냐 없었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라고 정리해 봤습니다. 즉, 자신의 안위(安危)와 부귀영화보다 백성의 안위와 행복을 위해 헌신을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 로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전적인 의미로 신하(臣下)는 임금을 섬기어 벼슬하는 사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奸臣'을 백성과 연관 짓는 것은 이치에 알맞지 않다고 볼 수도 있으나, 벼슬을 한다는 것은 정치(政治)를 한다는 것이니 연관 짓는 것이 타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치라는 것은 백성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여 주는 것이 가장 큰 역할이니까요.


마치면서

개인적으로 국사는 한 나라의 국민이라면 꼭 알아야 할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사회적으로 국사에 관한 관심이 거의 없는 것 같아 아쉬움이 큽니다. 실제로 초·중·고에서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고 있다니 문제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른 글로 대신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난세에 간신 춤춘다』의 에필로그인 간신이란 무엇인가? 를 읽어보시면 '奸臣'에 대해 정리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필자는 위와 같이 정리를 해봤는데, 논리적으로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법(法)이 모든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 못하듯이, 어떤 행동에 대한 원리(原理)와 원칙(原則)을 올바르게 가지고 있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보입니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백성/국민'이기에 '애민'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다면 후세에 '奸臣'으로 기억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게 필자의 생각입니다. 만약 타 세력에 의해 '奸臣'으로 기억되더라도, 향후 복권(復權)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각주:7].

  1. 한자의 단어 하나로 그 뜻이 정반대되는군요. [본문으로]
  2. 그렇지 않은 인물도 있습니다. 이런 이가 진정한 '奸臣'이겠지요. 대표적인 인물로 '윤원형'이 있겠네요. [본문으로]
  3. 물론 왕위 찬탈 과정에 개입하여 많은 비난과 비판을 받았습니다. [본문으로]
  4. 장죄(贓罪)는 지금의 '뇌물 수수' 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본문으로]
  5. 교형(絞刑)은 지금의 '사형 선고' 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본문으로]
  6. 실록에 따르면, 장죄로 인해 국무대신에 등록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본문으로]
  7. 실제 역사적으로도 이런 사례는 많이 있습니다. [본문으로]